나는 새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.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어떤 사람이 새 것을 좋아할까,이다. 새 것만 입고 쓰는 것이 일상인 사람일까, 아니면 매일 오래된 물건만 쓰도록 강요당한 사람일까. 나는 내 입장을 대변해야하므로, 후자의 입장을 지지하겠다. 나는 어린시절 '새'물건만 보면 가슴이 뛸 정도로, '새'물건에 목말라 있었다. 수납공간이 거의 없다고해도 무방했던, 그 좁은 집에 상대적으로 넘쳐났던 것은 책이었다. 부엌 찬장까지도 책이 꽂혀있었던 기억이 난다. 그 책은 나의 보물이기도 했지만, 동시에 모두 내다 버리고 싶은 물건이기도 했다. 누군가가 읽고 나에게 '버린' 듯한 느낌의, 낡고 오래된 책들. 표지가 너덜거려서 제본 부위의 굵은 실밥이 다 터져버린 것들도 수두룩 했다. 하지만 어쩌랴. 가지고 놀 것이 없는데. 내가 하루의 반 동안 책을 읽었다면, 나머지 반동안은 블럭쌓기 놀이를 했다. 드럼통같이 생긴 퍼런 플라스틱 통 가득 각종 크기의 레고와 정체불명의 블럭들이 한데 쌓여있었다. 헌데 그 역시 새 것처럼 반질반질한 블럭이 아니었다. 기스가 나고 손 때가 묻어 거뭇거뭇하고 또 때론 끈적끈적하기도 했다. 내게 새 물건은 언제쯤 생겨볼까? 앨범을 들춰보면, 난 오빠가 타던 보행기에 앉아 있고, 친척 언니가 입던 스웨터를 입고 있다. 뭐 하여간 더 쓸 수 있다 싶은 물건은 모두 내 차지였나보다.
물건을 사면 기분이 좋아진다. 마찬가지로 낯설지만 꽤 호의적인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. 새롭고 신선하다. 다른 사람의 가치관과 짤막한 인생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서 좋다. 난 타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지만,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좋다. '나'에게 주어진 각종 제약들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적어도 '정보'는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. 특히 나는 진취적이고 당당한 사람들에게 끌리곤 하는데, 그 이유는 그런 사람들의 삶은 남들보다 조금 특별하기 때문이다.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눈동자가 반짝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, 아직 세상이 살 만한 곳이구나 싶다고 해야할까.
헌데 요점은 이런 사람들의 눈빛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퇴색한다는 것에 있다. 처음엔 모든 것이 빛나던 사람이 그 윤기를 잃고 그저 그런 사람으로 전락해버린다. 첫 만남에선 몹시 즐거웠던 식사자리가,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국사시간처럼 변해버린다. 처음엔 따뜻함과 지성미가 몸 전체에 베어있는 것 같다고 평했던 이가 그렇게 속물적일 수가 없다. 한 두번 만남에선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 뒤통수를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. 이건 대체 왜 일까? 문제점은 나에게 있었다. 사람을 좋아해서, 첫 만남에 '장점'만 오만가지쯤 발견해내는 것이 나란 사람이다. 허나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믿음은 하나 하나 사그러들고 결국은 '단점'을 칠만가지쯤 발견해버린다. 그리고 실망한다. '아, 내가 이런 사람에게 이다지도 마음을 쏟다니.'
손 때 묻은 채로 받은 동화책에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아서였는지, 사용 중에 더 흠집이 나고 더러워져도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. 하지만 새로 쓰는 공책은 첫 장에 글씨 하나만 틀려도 다시 새 것을 사서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. 아마 난 '물건'에 대해 갖는 습성을 사람에게도 투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.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이후 만난 누구에게도 마음 속 깊이 새겨넣을만큼 진심을 다한 기억이 없는 것 같다. 또한 타인을 만나 그를 재고 따지고 실망하는 동시에, 상대방 역시도 나를 재고 따지고 실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 불안하여 뒷걸음친 기억도 많다.
인간은 사회를 떠날 수가 없다. 즉, 혼자서는 살 수 없다. 이 사실 내가 인정한다고 하여, 당장 올해부터는 따뜻한 배려심을 갖고 넓은 인간관계를 맺어보겠다는 식의 결심도 할 수가 없다. 그럴 능력이 내게는 없고, 아무리 노력하겠다한들 나의 이상적인 눈이 바뀌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. 허나 좀 소소한 다짐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. '그대로 받아들이자'는 것. 첫 만남에, 그 사람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찾아내야 할 의무는 내게 전혀 없다. 또한 첫 만남에, 그 사람 내부에 진득하게 깔려있는 장점을 캐치해낼 만큼 날카로운 눈을 가진 것도 아니다. 그러므로 앞으로 사람을 만날 때에는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고 그냥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. 좀 더 오랜 시간을.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, 타인에게 그리고 사회 안에서 더더욱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. 누군가를 평가하기엔 내 자신이 너무도 부족하니까 말이다.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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